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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야기

공자의 생애와 논어

by gh-story 202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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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사상은 현재까지도 동아시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무의식 안에도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유학의 피가 흐르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죠. 요즘 유교걸, 유교보이라는 표현도 있잖아요. 공자의 사상은 오랜 세월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현재도 살아 숨 쉬고 있는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공자의 생애와 논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공자의-생애와-논어
공자의 생애와 논어

< 목차>

1. 공자의 생애

2. 공자와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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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자의 생애

1) 공자는 누구의 아들?

공자는 세계 4대 성인중 그 출생이 가장 비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 주나라의 제후국이었던 노나라에서 태어났는데요.
공자의 실제 이름은 '공구'입니다. 공자의 '자'는 존칭의 뜻이 들어 있으니 공자는
공 선생님이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자의 아버지 이름은 숙량흘인데요.

하급 무관 출신입니다.

그런데 공자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만 옆에 있었다고 해요.

아비의 부재.

급기야는 공자가 3살 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즉, 공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잘 모르고 자랐다고 할 수 있어요.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베개 삼아 누웠어도
즐거움이 그 안에 있구나.
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부귀를 얻는 것은
내게는 그저 뜬구름과 같다.
-논어 술이편- 논어 명언

공자의 어머니 이름은 안징재입니다.

 공자를 낳을 당시 나이가 16세였다고 하네요.

낙랑 18세도 아니고 그보다 더 어린 나이였네요.

 

물론 당시는 결혼도 하고 애도 낳을 수 있는

시대였으니까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럼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의 나이는 몇 살이었을까요? 

무려 나이가 70세였다고 합니다.

( 60대였다는 설도 있음.)

예나 지금이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늦은 나이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2500년 동안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

숙량흘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군자는 잘못을 자기에게서 찾고
소인은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
- 논어 명언-


 여기까지는 공자 아버지에 대해 일반적으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공자의 아버지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공자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공자도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컸다고 해요.

 

그 이유는 공자의 어머니가 공자에게 아버지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공자의 어머니도 공자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그당시 중국 중원에는 봄이 되면 성대하게

봄축제를 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해요.

춥고 긴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아

사람들은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들판에서 봄을 선사해 준 자연에 봄제사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때 사람들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곡식으로

만든 고량주라는 술을 마시고

음악과 춤을 즐기면서 봄제사를 지냈는데요.

 

증자가 말했다. 
나는 매일 세 번 나 자신을 돌이켜 본다.
남을 위해 일하면서 정성을 다했는가?
벗과 사귀면서 신의를 다했는가?
배운 것을 몸에 익히도록 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 논어 명언-

봄축제의 하나였다고 하네요.

이 축제는 밤늦도록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이 축제를 즐기면서 하루를 보냈다고 해요.

이때 공자의 어머니는 공자를 임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되어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공자는 숙량흘의 정식아들로 인정받지 못하고

공 씨 집안의 자손으로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어려운 환경에서 공구를 키웠는데

엎친데 덮친다고 어머니는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집안 형편은 더 안 좋아졌는데

공구가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 안 씨는 끝내

세상을 등지게 됩니다.

 

공자가 말했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 일에 대하여 관여하지 마라!
-논어 명언 태백, 헌 문 편-

공구는 천하고 거친일을 하며 청년시절을 보내게 되는데요.

세력가 집의 축사나 창고지기를 하면서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19세에는 송나라 출신의 여인과 결혼해 아들 리를 두게 됩니다.

 

공자는 사생아라는 출생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주나라의 예법과 관제에 대한 공부를 깊게 했습니다.

그가 30세가 되었을 때는 중국역사상 최초의 학교를

노나라에 세우고 제자를 양성했고요.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명언 학이편-


그에게 배우려는 제자들이 계속해서 모여들었고

노나라 군주의 지원을 받아 주나라를 시찰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50대에는 노나라의 대사구의 벼슬도 했지만 이후

과업을 마무리짓지 못해 실각하게 됩니다.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 제자들을 데리고 중국천하를
방랑하며 자신의 이상을 펼칠 군주를 찾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달픈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말년에는 노나라로 돌아가 제자양성과 옛날 문헌 정리에 힘쓰다
기원전 479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자기만 못한 자를 벗하지 말라.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려하지 말라.
- 논어 명언 학이편-

2. 공자와 논어

공자가 살았던 시대는 철기시대로 농업 생산성이 증가했고

상업도 융성한 시대였습니다.

이렇게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면서 천하는 패권을 차지하려는

수많은 나라가 난립하게 됩니다.

이 시대를 우리는 춘추전국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혼돈의 시기에 공자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

이 시대적 고뇌를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사상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선두에 유가를 대표하는 공자가 있었고요.

 

논어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책입니다.

공자가 직접 쓴 책이 아니고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이 정리한 책인 거죠.

논어의 핵심은 '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유교 윤리의 최고 덕목이자 공자 사상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군자는 마음이 평화롭고 너그럽고 넓다.
소인은 늘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논어 명언 술이편-

공자의 사상인 유학은 현실에 바탕을 둔 가르침입니다.

어쩌면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를 모아 놓은 듯한 느낌이 들정도 이니까요.

문제는 그런 군자들의 덕을 알고는 있지만 생활 속에서 구현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때문에 공자의 논어는 현재도

의미 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으로 공자의 생애와 논어에 대한 짧은 이야기 풀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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